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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바이러스 Part 62023-07-16 11:55
작성자 Level 10

 1. 발생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새로운 생명의 여정이 시작된다. 하나의 수정란은 2, 4, 8, 16개로 계속 분열하여 세포 수를 늘리고, 그렇게 늘어난 세포들은 각자 맡은 기능은 다를지언정 미래에 태어날 새로운 개체의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다.

 

수정란이 완전한 개체로 성장하는 태아의 발달 과정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수정란이 분열하여 개체로 성장하면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여분의 세포가 생겨나고 이 세포들은 완성된 개체가 세상 빛을 보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다.1)  하지만 이러한 세포들의 죽음은 의미 없이 발생하는 사건은 아니다. 조각가가 큰 돌을 깎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듯, 우리 몸도 원시적인 형태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여 인체의 구조를 완성하기 때문이다.2)

 

하나의 개체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저히 통제되는 계획된 죽음(programmed cell death, 예정된 세포 사멸)3)으로 강제로 집행되는 처형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요구하는 자살 행위(apoptosis)4)에 가깝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성된 하나의 수정란이 무한대로 증식하여 수십조 개의 세포를 가진 개체로 성장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도 신비롭지만, 그중 어떤 세포는 살아남아 세상 빛을 구경하고, 어떤 세포는 건설 현장의 지지대처럼 개체의 탄생을 뒷받침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더욱 신기하다.

 


수정란도 잘게 쪼개보면 결국 산소(65%), 탄소(18.5%), 수소(9.5%), 질소(3.2%) 11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에 불과한데5) 하나의 개체를 완성하기 위해 분열하고 증식한 세포들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협동은 도대체 누구의 감독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원칙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그 비밀을 풀면 물질과 생명을 구분 짓는 명확한 경계가 드러나지 않을까? 

 

발생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자살행위, ‘예정된 세포 사멸은 세포의 분화나 증식만큼이나 중요한 태아 성장 과정의 일부이며6) 광범위한 조직에서 관찰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탄생을 앞둔 새로운 유기체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되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기전을 활용하여 불필요한 구조를 제거하고 특정 조직의 세포 수를 통제하며 복잡한 기관을 조각하여 자신의 성장을 강력히 제어한다.7)8)

 

2. 성숙

 

생존의 목적을 다한 세포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예정된 세포 사멸은 태중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다. 성인의 경우 심장의 심근 세포나 뇌의 신경 세포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포는 매초 수십만 개, 매일 천억 개가량이 예정된 죽음을 맞이한다.9) 이런 세포들은 수지상세포와 대식세포 등 식세포(食細胞)에게 잡아먹히고 잘게 부서져 소화되며10) 일부 성분은 재활용되어 다시 새로운 세포의 재료가 된다.11)12)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 수를 약 37조 개로 추정할 때13)14) 우리가 매년 정상적인 세포 사멸을 통해 잃는 세포의 양은 우리 몸 전체 무게에 가깝다. 세포 사멸은 조직 내 세포 수를 적절히 유지하여 인체 내부 환경을 안정화하는 데 필수적이며15) 손상되거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세포를 제거하는 방어적 기전도 제공한다.16) 만약 이 과정이 없다면 80세의 사람은 골수와 림프절의 무게만 2톤에 달하고, 장의 길이는 16k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17)

 

유기체의 생존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세포들은 어떻게 생을 마감하기에 자살이란 표현을 쓸까? 기능이 쇠퇴하여 유기체의 생존에 더 이상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세포들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생명을 거둬들이는 식세포(수지상세포, 대식세포 등)를 끌어모으기 위해 나는 죽어 마땅하니 빨리 와서 나를 찾아 제거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들의 신호가 얼마나 분명한지 학계에서는 그 신호를 말 그대로 ‘find me(나를 찾아)’ 신호와 ‘eat me(나를 먹어)’신호라 명명했다.18)19)20)


 

 저승사자를 직접 부른 그들이 사형 집행을 앞둔 시점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도 놀랍다자살세포들은 죽음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혹여 식세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잡아먹는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파괴되어세포 내부 물질이 밖으로 흘러나가 주변 환경을 더럽히고 불필요한 면역반응을 유발할까를 염려하여 스스로를 응축시키며세포 내부 물질을 세포질 막으로 된 소포로 포장한다.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유기체의 생명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스스로 염습(斂襲)을 하고 관()을 짜는 자살세포의 눈물겨운 헌신 덕에 예정된 세포 사멸은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끝난다. 이는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여 세포가 부풀어 터지며 내부 물질을 밖으로 쏟아내고 염증을 유발하는 괴사(necrosis)’21)와는 대조적이다.22)23)

 

3. 화두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우리 몸의 변화와 그런 변화 속에서도 올곧이 유지되는 생명의 신비는 실로 경이롭다. 몸을 구성하는 37조 개의 세포가 100조 개가 넘는 세균과 공생하는 것도 그렇고,24) 하나의 세포가 100조 개의 원자로 구성된 것을 생각하면 경이로움은 극에 달한다. 실제로 우리 몸은 놀랍도록 큰 원자들의 집합체이다. 우리 몸에는 우주의 별보다 더 많은 원자가 있다.25)

 


이 수많은 원자들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열역학 제2 법칙26)을 준수하면서도 유기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질서 정연한 현상을 일으킨다.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는 아주 작은 물질이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수로 모여 우주와도 같은 거대한 유기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명이라는 하나의 질서를 완성하는 설명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선구자 에르빈 슈뢰딩거27)는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원자보다도 작은 미립자의 세계를 파고들어도 이 비밀을 풀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그가 1943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세포에 대한 물리학적 관점이라는 강연을 연다. 그리고 그 강연의 내용을 정리하여 1944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다.

 

슈뢰딩거는 이 책에서 생명의 비밀을 풀 열쇠로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진다.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왜 이리도 작은가?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그렇게 커야만 하는가?’28)

 

==============(7편에 계속)


[참고 문헌]

1)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10)00129-7?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10001297%3Fshowall%3Dtrue 

자가 면역 및 죽은 세포의 제거

2)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00418-006-0214-1

발생 중인 세포 사멸: 배아 형성

3) https://en.wikipedia.org/wiki/Programmed_cell_death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 Programmed Cell Death

4) https://en.wikipedia.org/wiki/Apoptosis

apoptosis

5) https://www.forbes.com/sites/startswithabang/2020/04/30/how-many-atoms-do-we-have-in-common-with-one-another/?sh=162735b31b38

우리는 서로 얼마나 많은 원자를 공유하고 있을까?

6) https://pubmed.ncbi.nlm.nih.gov/8801138/

Apoptosis: 태아 발달에서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

7)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047912/

발달 세포자멸사의 필수 요소

8)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10103/

발달 생물학. 6. 세포 사멸 경로

9)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10103/

발달 생물학. 6. 세포 사멸 경로

10)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454446/

사멸 세포 제거를 위한 삼킴 신호 및 식세포 기구

1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3%9D%EB%AA%85-%EC%9C%A0%EC%A7%80%EB%A5%BC-%EC%9C%84%ED%95%9C-%EC%A3%BD%EC%9D%8C-%EC%95%84%ED%8F%AC%ED%86%A0%EC%8B%9C%EC%8A%A4/

생명 유지를 위한 죽음 아포토시스

12)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10)00129-7?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10001297%3Fshowall%3Dtrue

자가 면역 및 죽은 세포의 제거

13)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3109/03014460.2013.807878?journalCode=iahb20

인체의 세포 수 추정

14)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77-019-0240-6

건강과 질병의 Efferocytosis

15)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526045/

조직학, 세포 사멸

16)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9922/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의 조절

17) https://www.nature.com/articles/35083653

세이렌의 노래

18)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931173/

세포 사멸 세포 제거의 Find-me eat-me 신호: 진행 및 수수께끼

19)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454446/

사멸 세포 제거를 위한 삼킴 신호 및 식세포 기구

20) https://www.nature.com/articles/nri2214

세포 사멸 세포의 삼킴: 좋은 식사를 위한 신호

21) https://en.wikipedia.org/wiki/Necrosis

괴사

22)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047912/

발달 세포자멸사의 필수 요소

23)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117903/

Apoptosis: 프로그램된 세포 죽음의 검토

24)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Microbiome_Project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

25) https://www.forbes.com/sites/startswithabang/2020/04/30/how-many-atoms-do-we-have-in-common-with-one-another/?sh=162735b31b38

우리는 서로 얼마나 많은 원자를 공유하고 있을까?

26) https://en.wikipedia.org/wiki/Second_law_of_thermodynamics

열역학 제2법칙

27) https://en.wikipedia.org/wiki/Erwin_Schr%C3%B6dinger

에르빈 슈뢰딩거

28) 에르빈 슈뢰딩거. 서인석, 황상익 역, 생명이란 무엇인가. 한울엠플러스. 1992. P 32-34